씁쓸한 메일 한 통

최근 Watcha에서 진행하던 블록체인 프로젝트 콘텐츠프로토콜(CPT) 서비스의 사업 중단 사실을 이메일로 접했다.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그리고 유튜브 등을 통한 콘텐츠의 소비가 현대인의 일상에 자리하게 된 현재,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과 조작 가능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블록체인 시스템과 콘텐츠 산업의 결합이 콘텐츠프로토콜 사업의 아이디어였다.

나름 Watcha의 장기 유저이기도 하고, 짧게나마 블록체인 업계를 접해본 경험으로 인해 관심을 가졌던 프로젝트였는데, 이렇게 끝을 맺는 것을 보니 씁쓸했다. 프로젝트의 지속성에 의문이 제기된 시점에, 빠른 판단을 통해 남은 사업 자금이라도 투자자들에게 다시 돌려주고자 한 결정은 지지한다. 투자금만 받아 놓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프로젝트를 수없이 보았기 때문인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의미있었던 시도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자체가 Bitcoin이라는 화폐를 통해 제시된 것이니만큼, 이를 플랫폼으로 확장하고자 했던 이더리움의 시도는 유망해 보였지만 이렇다 할 Use Case가 제시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기부 기록의 저장, 광고 수주, 논문 리뷰, 게임 아이템, 그리고 의료 정보까지- 그럴듯한 아이디어는 지속적으로 물밀듯 쏟아져나왔지만 블록체인이 용량이 큰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의 용도는 아닌 만큼 한계가 있었다. 공개되어야 할 정보와 공개되면 안 되는 정보가 교차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보안 문제에 대해서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도 못했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이유

그럼에도 콘텐츠프로토콜에서 제시한 창작자와 소비자 간의 연결이 특별해 보였던 이유는, 블록체인만 할 수 있는 것을 비로소 그렇게 거창하지 않은 규모로 실험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용자가 모이는 플랫폼이 통계적 데이터를 독점하고, 이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분산 저장소를 통해 다수의 사용자가 이를 검증하도록 하는 것. 하지만 그러한 통계적 데이터가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바로 그들이 말하는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아카이빙한 왓챠라는 플랫폼에서, 이 데이터에 가치를 부여하고 창작자들이 중앙 플랫폼을 거치지 않은 채 직접 접근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러기 위해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보이는 블록체인을 활용한다면..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의 흐름과 블록체인에 올려야 할 것이 꽤 명확해 보이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e.g. 시청자 정보, 별점) 어쨌든 구현이 최종 단계까지 이르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니까 말이다.

표면상의 이유로는 가상화폐 규제의 불확실성이었다. 향간에서는 토큰 가치의 변동성 때문이기 때문에 스테이블 코인과 같이 강제적으로 가치를 동결할 수 있는 형태를 사용했으면 달랐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안정적인 서비스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프레임워크의 부재와 잦은 프로그램 오류, 확장성과 보안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 결국은 블록체인을 말하는 사람들만 많아지고, 블록체인을 개발하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업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이디어를 펼치기에 프레임워크는 위태롭다

블록체인 기술은 화폐와 투자의 대상으로 더 주목을 받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 사업의 대다수는 기술의 안정화와 더 나은 아키텍처, 프로토콜 개발을 위한 연구에 집중하기보다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공개되는 백서와 투자금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에 더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자했다. ICO 홈페이지와 토큰 distribution을 외주로 받는 업체가 생긴 것만 해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프레임워크 중 가장 오랜 개발 기간을 거친 이더리움조차도 여전히 안정적인 가치 교환의 매개체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설계와 구현상의 결함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지만 코어(Core) 아키텍처를 얼마나 견고하게 정립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대중들에게 선보일 fancy한 사이드 프로젝트에만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플라즈마가 그랬고, 캐스퍼와 샤딩도 내게는 다를 바 없어 보인다.

scalability가 진정한 bottleneck인가?

근본적으로 토큰 가치의 안정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용자들이 다수로 존재하는 한 토큰의 변환과 사용 자체가 촉진될 수는 없다. 중앙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고 소각해서 표면적인 가치만을 유지하는, 그저 말장난일지도 모를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토큰 자체가 stable할 수 있는 기술적인 신뢰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실패 원인을 소프트웨어 품질 관리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프레임워크의 안정화에 집중하는 것이 침체된 업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지 않을까. 짧은 생각을 이곳에 묻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