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ough the Women Techmakers Scholars Program - formerly the Google Anita Borg Memorial Scholarship Program - Google is furthering Dr. Anita Borg’s vision of creating gender equality in the field of computer science by encouraging women to excel in computing and technology and become active leaders and role models in the field.

Google의 Women Techmakers Scholars 소개 페이지에 있는 메시지다. 2015년쯤이었나, 갓 전산학과에 들어온 그 당시 인터넷 서핑을 하다 언뜻 소개글을 봤다. 그땐 Anita Borg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땐 지원할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resume에 쓸 거리를 만들어서 꼭 도전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때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나는 느지막한 학부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구독 버튼을 눌러놔서였던가, 이번 봄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Women Techmakers Scholarship 안내 메일이 왔다. 일단 달력에 표시나 해두자, 하고 기록해놓은 지원서 제출 기간이 다가오자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에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멋진 사람이 되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보고 싶었다. 지원하기 위해서는 CS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이 분야에서 소수자 그룹을 위해 한 일 등에 대해 설명하는 에세이를 작성하고, Technical Project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사실 쌓여있는 과제들, 플젝 마감이 닥쳐오는 시기에 이것까지 겹치니 지원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다른 것들을 좀 희생하더라도 이건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껏 내게 조금 어려운 숙제처럼 남아있었던 ‘테크 업계에서 여성으로써의 정체성’, 이런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Women Techmakers 2018 행사를 다녀왔던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던 이유도 있다.

지원서를 쓸 때 가장 어려웠던 문항은, 지금껏 내가 이 분야를 공부하면서 나 외의 다른 사람들, 소수자 그룹을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설명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껏 나의 1순위는 스스로의 성장이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equality라는 가치를 위한 활동을 기획하거나 특별하게 기여한 경험을 찾기 힘들었다. 과학 동아리에 소속된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했던 경험을 되짚어서 적기는 했지만, 지금껏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현실적인 노력을 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 못하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이렇게 깨닫게 된 것도 과정에서 얻은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서류 결과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나왔다. 사실 안 된 줄 알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종강하고 나서 학점이 나오는 날 결과 메일이 왔다. 일주일 후에 인터뷰 일정이 잡혔고, 간단한 코딩 테스트(!)가 포함된다고 했다.

덕분에 종강 이후의 꿀같은 일주일 동안 LeetCode에서 알고리즘 문제를 열심히 풀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문제를 푸는 데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시간복잡도나 공간복잡도 면에서 효율적인 풀이를 제시하는 게 이런 문제들의 핵심이지만, 왜 나는 naive한 방법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지… 어쨌든 정말 기본적인 것도 몰라서 창피당하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Tree, Hash Table 등의 데이터 구조를 다시 복습하고 혹시나 해서 Dijkstra, 그래프 순회 알고리즘 등도 쭉 다시 보고 갔다.

Google Coding Interview Question Sample도 풀어봤는데, 실제 interview 문제는 이것보다 꽤 단순한 형태였다.

인터뷰는 Skype를 이용하거나 직접 구글 코리아 오피스로 찾아가서 보는 것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어찌됐든 얼굴 대하고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먼 길을 떠났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인터뷰를 위해 준비된 방에서 Scholarship Program을 담당하시는 분, 그리고 구글 엔지니어 한 분과 함께 면접을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이 Women Techmakers Scholarship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는 질문들이었다. 지원서와 마찬가지로 Underrepresented Group을 위해 Tech 분야에서 내가 이끌거나 참여한 활동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고, Team Project에서 팀워크를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경험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그룹에서 Diversity가 필요한 이유를 얘기해 달라고도 했다.

그날은 1년 중 정말 역대급으로 긴장한 날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나 긴장했는지는 모르지만.. 고등학교 학생들을 멘토링한 경험을 회상하고, 과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언제나 소수 그룹으로 묶여야 했던, 항상 어딘가에 억눌려 있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연결지어 말을 이어나가다가 약간 목이 메고 말았다. (…) 그때 너무 당황했는데 면접관 분들이 스트레칭 하자고 하고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

팀워크에 대해 말할 때에는 애자일 프로세스를 팀 프로젝트에 적용해 보려고 했던 경험, 페어 프로그래밍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Diversity는 면접을 보기 전에 곰곰히 생각했던 주제였는데, 막상 바로 질문을 받으니 깊이있게 대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 기술을 만드는 사람도 다양해져야 한다는 요지로 말했다. 한 종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그룹은 결국은 한 가지 생각에 갇히기도, 일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그룹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기술이 사회의 발전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대인 만큼, 건강한 사회가 구성되는 데에는 기술자들의 다양성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 어찌보면 정석인 답변이고 조금 지루하다고도 느낄 수 있겠다. 건강한 사회란 뭘까, 테크에 관련된 분야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의 의미하는 바가 있는가? 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의식할까, 개발자, techmaker라는 단어 앞에 ‘여성’, women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잘못된 것 아닐까? 왜 나는 여성을 위한, 여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큰 의미를 두고 그 일원이 되고 싶어할까.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또 준비하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질문이다.

사실 아직도 그런 질문들에 명료하게 대답할 만큼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다.

코딩 테스트에서는 각각 palindrome, binary search tree에 대한, LeetCode 난이도 Easy 정도의 간단한 문제가 나왔다. 하지만 처음에 filter 함수를 쓰느라 메모리 공간을 꽤나 낭비하는 방식으로 푼 탓에, 이걸 효율적으로 개선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고, 다음 문제도 바로 답을 생각해내지는 못했다.

다만 TDD(테스트 주도 개발)을 알고리즘 문제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이번에 했는데, 인터뷰 때에도 용기를 내서 그 방식으로 푼 것이 뿌듯하다. 사실 TDD에서 중복 제거-리팩토링으로 이어지는 과정 때문에 문제 푸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차라리 TDD 대신 풀이를 외우고 바로바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코딩 테스트를 준비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번의 결과가 계속해서 문제를 ‘푸는’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는 확신을 준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인터뷰를 거쳐 합격 통지를 받았다. 8월 말에 구글 시드니 브랜치에서, 아시아 전역에서 선발된 장학생과 Retreat 행사가 있다고 한다. 사실 벌써부터 기대되어 잠이 안 온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륙에서 함께 CS를 공부하는 언니, 동생들을 만난다는 게 꿈만 같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여성성을 개발자, 또는 기술자로 살아가면서 억누르고 버려야 할 무언가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해 준 것이 먼저 이 길을 걷고 동등한 것들을 성취한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여성, 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계속 이 길을 걸어갈 용기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내가 어쩌면 더 어린 세대들에게 그런 증명을 더해줄 수 있을지 않을까, 그런 희망적이고 두근두근한 생각도 든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