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를 봤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상영관의 분위기는—그저 여느 주말 오후의 활기였을지도 모르지만—유명 감독의 오랜 공백을 깬 화제작에 대한 기대로 상기되어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의아함과 혼란스러움이 뒤섞인 정적, 뒤이어 미련 없이 자리를 뜨기 시작하는 대부분의 관객들. 휑한 상영관에서 구태여 재생되는 쿠키 영상은 어쩐지 초라하고 맥없이 느껴졌다. 소위 호불호 없는 명작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의 주변 분위기를 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일종의 경탄과 여운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엔딩 크레딧이 다 지나가도록 한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앉아있는 사람들. 영화 끝나고 그런 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면 왓챠피디아에 접속했을 때에도 후한 별점을 기대해볼 수 있다.

확실히 「호프」는 그렇지는 않았다.

호프는 미스터리 SF 영화다. 인간과 외계인 간의 전투를 소재로 한다. 이렇게만 말하면 벌써 닳고 닳아 하품이 나는 진부한 구도다. 다만 내 생각은 이렇다. 적당히 유능하고 영리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면 이런 우주 스케일 블록버스터 SF는 보통 재미가 보장된다. 외계인, 즉 지능을 가진 이 인간 이외의 생명체. 그 존재 자체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다. 보통 관객들이 처음 가장 궁금해하는 건 이 외계인의 정체다. 어떤 행성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이 지구에 온 것인지, 생김새는 어떻고, 어떤 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지능과 과학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그래서 요즘의 소위 “힙함”을 추구하는 SF물들은 외계인 디자인에 신경을 꽤나 많이 쓰는 것 같다. 주기율표에서 뜬금없이 비활성기체 제논을 가져다가 의외로 귀여운 고체 돌덩이 생명체를 선보인 「프로젝트 헤일메리」, “태양이 세 개인 행성에서 생존을 위해 병렬 계산을 해야 했다”라는 기가 막힌 설정 위에서 컴퓨터 소자를 닮은 외계 존재를 탄생시킨 「삼체」. 세계관 자체도 잘 짜여져 흥미진진했고, 이야기와 인물 하나하나 끝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 나름의 설명을 찾아 고개를 끄덕이면서 개운하게 봤던 것들이다.

하지만 호프는 그런 측면에서의 관객의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가졌던 생각인, “나는 SF도 좋아하고, 나홍진 감독의 전작인 「곡성」도 정말 재밌게 봤으니까 이건 몇 배로 더 재미있겠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보게 되면 결국 분노에 휩싸여 1점 감상평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심지어 외계인의 존재가 의도적으로 숨겨진다. 너무 꽁꽁 숨기고 숨겨서 약이 오를 정도다. 나는 심지어 정신계 능력을 쓰는 외계인이라 사람들에게 환상을 보게 해서 서로 죽고 죽이도록 하는 건가? 라는 망상을 진지하게 했다. 예고편을 안 본 덕이긴 하다. (예고편을 보지 않았던 것은 확실한 이득이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꽤나 흥미진진하다고 볼 수도 있다. 곧 외계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 궁금증과 미스터리가 해소될 거라는 “희망”을 갖고 다음 장면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거다. “얼마나 대단한 외계인을 숨겨놨는지 한 번 보자.”

이 희망은 곧 무참하게 깨진다. 기발함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누가 봐도 진격의 거인 에렌 예거를 연상시키는 푸르죽죽한 알몸 거인 외계인이 나타난 후로부터 말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기술적인 부분, CG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형태 자체를 의도적으로 진부하게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지금껏 영화계와 평론가의 극찬을 받아온 나홍진 감독님이 그저 감이 떨어진 걸까?

정말 혼란스러운 점은, 이 별 것 없는 외계인에 대한 실망감이 이후의 시퀀스들을 모두 퇴색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이번에는 전기톱을 들고 외계인을 해부하더니 (이 장면에선 꼭 다시 살아날 것처럼 긴장감은 엄청나게 조성해 놓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더 알려주지 않고, 그 외계인과는 또 전혀 다르게 생긴 또다른 익숙한 외계인—타노스와 나비족—들을 새로 등장시키며 궁금증과 의문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도록 만든다. 외계인의 “겉모습”은 드러났지만, 여전히 그들의 “속마음”을 알아낼 방도가 묘연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외계인의 생김새를 굳이 숨긴 것과 같은 양상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르면서 설정이 슬슬 풀릴 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은 외계인이 왜 마을에 모습을 드러낸 건지, 지구에서 뭘 하던 건지, 영화는 그 어떤 의미있는 정보도 흘리지 않은 채 주인공들과 외계인들이 힘을 합쳐 삽질하는 것만 보여준다. 그 삽질 액션 씬에 너무나 공을 들인 나머지 몰입감은 최상이라 정신없이 보게 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왜 이러고 있는 건지에 대한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심지어 잘못된 가설을 의도적으로 표면에 전시해놓고, “이렇게 믿을 거면 믿던가” 하고 약을 올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에렌 예거 외계인이 아기 외계인의 엄마라는 설) 그리고 이건,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맞다. 곡성의 수법이다.

엔딩에서마저 영화는 표면적으로 끝맺음다운 끝맺음을 할 시늉도 내지 않는다. 영화 속 인간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모르겠어”. 이어서 외계인들의 대화를 구태여 자막으로 번역해서 보여주지만, 뜬금없는 새로운 우주선의 등장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폭발. 시간과 심장 운운하는 난해한 대사는 그저 관객들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꼭 뭐 먹다 걸린 표정으로 상영관을 떠났던 것 같다.

다만 영화의 공백과 수많은 맥거핀(이야기의 초반에 관객이나 등장인물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 전개나 결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들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본다면 어떨까? 심지어 애초에 이런 장치들이 “미끼”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감독의 스타일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역설적으로 이런 “빈 공간”과 모순들 때문에 해소되지 않고 오래 남는다.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쏟아내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다고 느끼는 것 같고, 나도 정말 오랜만에 영화 보고 나서 무언가 글을 남겨야겠다고 결심했으니 말이다.

곡성, 그리고 감독의 이전 필모그래피와 굳이 연결시키자면 이 영화 또한 궁극적으로 보면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무지와 오해로 벌어지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궁극적으로는 악하지 않은 개인이 얼마나 쉽게 섣불리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일을 그르치고 마는지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어쨌든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외계인들은 인간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분법적 관점에서의 가해자가 아님을 알게 되며, 오히려 엔딩에서 선과 악의 구도는 완전히 전복되고 영화 제목인 「호프」는 결국 인간이 아닌 외계인의 희망이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 속 인간들은, 여전히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헤맬 뿐이다. 반면에, 외계인들 또한 이런 무지함의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비극을 자초한다 (그들의 왕자인 칼리의 행방에 대해 오해하고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며 동료를 잃는다).

이렇게 한 발 물러서서, 나름대로 거시적 관점으로 영화를 되짚어 보다 보니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설명의 부재가 한편으로는 그 외계인에 다양한 실제의 존재를 대입해보고도 싶게 했다. 내게는 초반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줄곧 눈에 띄었던 멸공이라는 단어가 곳곳에 적힌 현수막이 오래 남았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겠다. 전쟁 중, 혹은 전쟁의 잔재가 선명한 시대에서 적국의 사람들은 외계인과 다름 없다. 그들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순간 전쟁 중 벌어지는 살육은 동족을 향한 것이 되니까 말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의 우리나라를 상상해 보자. 실재하는 위협,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미묘한 이데올로기적 존재는 빨갱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졌다. 내게는 그게 영화에서 묘사된 외계인과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고, 영화 초반에 외계인이라고 오인하고 무참히 쏴버렸던 정육점의 마을 주민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떠올렸다. 물론 6·25 전쟁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 그 불안정한 시대 상황을 단순히 차용하고자 하는 의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굳이 정치적인 맥락으로 확대 해석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영화가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부러 애매모호하게 그려냄으로써 이런 상상의 여지를 열어주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반대로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유독 강한 분노도 재미있는 지점인 것 같다. 정답이 있는 것을 바라는 사람의 심리. 불가해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영화 바깥의 사람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자주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의도치 않게 잘못을 저지르는 건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는, 장르에 기반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되었던 영화였지만, 동시에 오랜만에 신선한, 또 영화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였다. 예상한 것을 깨는 의외성, 그리고 영상의 빈 공간 속 끝없는 해석의 즐거움도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다.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이런 영화도 가끔 가다 (실제로 곡성 이후 10년만이기는 하다) 나와 줘야지, 싶다. 다만, 사족을 붙이자면 자금이 부족해서 속편을 낼 수도 있고 못 낼 수도 있다, 라는 참 일관적이게도 모호한 감독님의 태도는 솔직히 좀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3부작으로 기획한 거라면 끝까지 책임지고 한다고 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호프」 손익분기점 넘기기 기원 1일차 시작.